SSM은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아카이브

며칠 전 아내가 급하게 등본과 초본이 필요했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주민센터인데, 난 신세대라 온라인으로 손쉽게 발급해주려 했다. 아내 앞에서 폼 나게, 그것도 공짜로.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런데 등본은 한 장인데 초본은 무려 3장이나 된다. 하필 집안에 A4용지가 세 장뿐이다. 샅샅이 아이들 방까지 압수 수색을 해도 흰 종이짝 하나 발견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주민센터보다 먼 학교 앞 문방구까지 부리나케 다녀왔다. 이 무슨 밑지는 장사인가? 아내 앞에서 폼이나 잡지 말 걸. 

  나는 초본이 3장이나 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른두 번이나 집을 옮겼다. 이사 기록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2000년에 결혼하고 지금까지 무려 열일곱 번이나 이사 했다. 반 이사 전문가다. 징글징글하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 읽기장이나 사진, 심지어 결혼식 비디오테이프까지 모조리 잃어버렸다. 애틋한 소년의 모습도 행복했던 결혼식 영상도 내겐 그저 기억 속에만 까마득히 남아있다. 매우 안타깝다. 내 기억을 기록할 수만 있다면 모두 담아내고 싶다. 그리고 가끔 꺼내어 아이들과 추억에 잠기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할 때마다 잘 보관할 걸 후회가 막심하다. 

  1996년 인터넷 아카이브를 설립한 브루스터 카일은 그의 웹사이트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그들의 문화나 대대로 전해져 오는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이러한 유물이 없다면, 문명은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배울 방법이 없고, 그것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우리 문화는 점점 더 디지털 형태로 유산을 만들고 있다. 바로 아카이브의 임무는 이러한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자, 사학자, 학생을 위한 인터넷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는 수백억 개의 웹 페이지, 수천만 권의 책과 텍스트, 수백만 개의 오디오 녹음, 이미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 유형의 자료를 보관하는 비영리 도서관이다. 아카이브 웹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컬렉션을 검색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캡처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아카이브는 온라인 저장창고로서, 전 세계 디지털 자료를 모아 저장하고 있고 선두주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은 주요 국가기관이나 비영리 재단에서도 앞 다투어 체계를 만들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는 2004년부터 매년 세계 104개국 2,325개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해 발표하고 있다. 평가항목은 교육 학습 여건, 연구 생산성, 연구 영향력, 국제화 수준 등이다. 즉, 학교 도서관이나 온라인 아카이브에 잘 보관된 오랜 세월 축적된 우수한 연구 논문과 관련 자료 및 도서 규모가 그 학교의 큰 경쟁 지표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분야를 살펴보자. 가까운 일본 무대음향가협회는 일본연극음향효과가협회와 일본PA기술자협의회가 연합하여 2000년 1월 1일에 무대음향가협회를 창립하였고, 2013년 4월 1일에는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우리보다 무려 7년이나 늦게 창립하였다. 그러나 홈페이지와 SNS를 방문해 보면 어느새 수많은 기술 자료와 미디어 자료가 놀라우리만큼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만큼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일본보다 7년이나 빠른 우리 협회는 그에 못지않게 이미 30년 전부터 SSM과 같은 ‘소리회지’가 매우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 발행되었다. 얼마 전 회지를 직접 제작한 박영철 고문님으로부터 원본을 전해 받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협회 유물이다. 그러나 상당부분 소실되고 얼마 안 되는 분량뿐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하셨다.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협회원 모두가 우리의 역사와 기록을 모으고, 세미나로 공유한 자료는 아카이브로 잘 보존될 수 있게 힘써보자. 또 다시 우리 기록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나 둘씩 소중한 자료를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아카이빙하여 우리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어 주자. 우리 유산을 보존하고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게, 그리고 그것에 대해 기억할 수 있도록 회원 모두가 힘써보자.

SSM은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아카이브다.

1993년 창간된 무대음향협회 전신인 ‘소리회’의 소식지 (자료제공 : 박영철 고문 | 사진 : 김홍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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