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문화예술회관 최주영무대기술감독

“단순히 기술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해요. 

무대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거든요.

  • Prologue
  • 지난 3월 말, 계절이 무색하게 이른 여름 같은 날씨에 문경문화예술회관을 찾았다. 
  • 공연장 주변은 예술공원화 사업으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공연장 안도 객석 교체 공사로 인해 공연이 잠시 멈춘 상태였다. 안팎으로 새로운 모습을 준비하는 회관은 잠시 숨을 고르며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경문화예술회관은 문경 시민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지역의  중요한 문화 중심지다. 이번 공사도 그 일환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의 하나다. 
  • 그 중심에는 최주영 감독이 있다. 공연장 운영과 무대 위, 무대 뒤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이번 변화의 과정도 직접 챙기며 더 나은 공연장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단순한 시설 개선이 아니라,   시민들이 더 편안하게, 더 가까이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준비였다. 
  • 이번 인터뷰에서는 공연장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공연은 잠시 멈췄지만, 공연장을 향한 진심과 열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새롭게 단장한 객석에서 관객들을 다시 만날 그날을 준비하며, 지금 이곳의 변화를 함께 나눈다.
예술공원화 사업이 한창 진행중인
문경문화예술회관 전경
공연장 내부 객석 교체공사도 진행중이다. 
25년 4월말까지 공연장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이다.

감독님, 간단히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기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최주영입니다. 극장 일은 대구 앞산 청소년 수련원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이후 영덕예주문화예술회관에서 5년 정도 근무했고, 2012년에 문경으로 오게 돼서 지금까지 13년 동안 이곳에서 무대기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일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젊었을 때는 음악을 좋아해서 드럼을 치기도 했고, 음향 일을 하면서 여러 공연도 다녀봤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무대기술 쪽으로 길이 열리게 되었죠.

청소년 수련원에서 어떤 계기로 무대기술을 맡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시설 관리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청소년 수련원에서는 공연장이 있었고, 이진원 감독님이 그 일을 하시다가 서울로 옮기시면서 자리가 생겼어요. 음향 쪽 일을 하고 싶었는데, 팀에 계신 과장님이 음향 자격증도 있고 직접 오퍼를 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는 무대 기계 쪽을 맡게 됐죠. 

그런데 해보니까 오히려 기계가 더 잘 맞더라고요. 조작하고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조명 담당도 새로 맞이하고,, 그렇게 팀이 점점 정비되면서 저는 무대기술 전반을 다루게 됐습니다.

그때는 한 공연을 하려면 팀이 작아서 음향도 보고, 기계도 보고, 조명도 함께 손대야 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를 배우게 됐고, 제 적성이 뭔지도 알게 됐죠.

드럼, 베이스, 기타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최주영 감독은 직장인 밴드, 공연 세션 등 음악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사진은 장근수 밴드 공연에서 드럼을 치고 있는 모습(가운데)

음향 렌탈 쪽에서 일하셨던 경험도 있으시죠?

네, 90년대 초반쯤이었어요. 고등학교 친구였던 신동화 부장이랑 같이 대구에서 음향 일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이벤트 제국’이라는 토탈 이벤트 회사에서 일했어요. 무대, 조명, 음향, 특수효과까지 다 하는 회사였는데, 규모가 점점 줄어들면서 저는 ‘류제호 음향’으로 옮겼습니다. 

그 회사에서는 나이트클럽 음향공사를 많이 했어요. 또 서울 팝스 오케스트라가 전국 공연을 할 때 음향 스태프로 참여했죠. 음향 자격증은 2000년 초반에 취득했고요. 그 당시에는 밤새 공사하고, 바로 다음 날 공연장 가서 셋업하고, 정말 정신없이 지냈어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경험들이 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역 음악인들과 함께 다양한 연주활동도 펼치고 있다.
포스터 제일 우측하단에 드럼 ‘최주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네,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직업도 많이 했어요. 산업안전 전공을 살려서 포스코 플랜트에서 안전관리자로도 일했었고, 삼성전자 서비스에서 컴퓨터 수리도 했어요. 그라우팅, 방수 같은 건설 관련 일도 했고요. 

음악은 계속하고 싶어서 실용음악학원에서 드럼 강사도 했고, 밴드 활동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 무대기술 일을 하는 데 다 밑바탕이 된 것 같아요.

예주문화예술회관에 근무할 당시 (30대 후반)

영덕 예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영덕에서는 사실 처음부터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구에서 자격증도 많이 따놨고, 부모님도 계시니까 대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당시 이종욱 감독님께서 계속 설득하셨어요. 결국 3개월 동안 고민하다가 가기로 했죠.

영덕에서의 5년은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공연은 많지 않았고, 공연 외 시간에도 극장 관리나 기타 업무로 너무 바빴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버틴 시간 덕분에 지금 제가 문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 같습니다. 고생도 많았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고, 혼자서 극장 전체를 이해하고 운영하는 법을 체득할 수 있었어요.

무대세트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3D 도면
스케치업으로 직접 만든 도면으로 세트를 제작하고 실제 무대에 올려 공연을 진행할 정도로 무대기술, 세트 제작에 독보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다. 

문경으로 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문경으로 오게 된 건 현재 대전연정국악원의 팀장으로 근무중이시고 문경문화예술회관에 2년간 근무하셨던 이한수감독님 덕분입니다. 감독님이 문경을 추천해주셨고, 덕분에 이직을 하게 됐어요. 사실 문경도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막상 와보니 참 좋더라고요. 이곳 사람들도 따뜻했고, 공연장 환경도 제가 일하기에 잘 맞았어요. 무엇보다도 문경에서 제 인생의 반쪽을 만나게 되었죠. 일도 일인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큰 인연을 얻은 셈이에요.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문경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특히 지역 행사와 연계된 공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하는 공연은 항상 특별해요. 문경이라는 지역 특성상,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지는 무대가 많았고, 그런 공연을 준비하면서 얻는 보람이 큽니다.

또 문경에 와서 공연장 환경도 많이 좋아졌고, 예산이나 장비 측면에서도 예전보다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협력해서 공연 하나하나를 완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늘 기억에 남는 일이죠.

과로로 힘들었던 경험도 있으시다고요?

네, 그때는 공연이 너무 많아서 밤낮없이 일했어요. 공연 설치하고, 또 다른 공연 준비하고… 그렇게 무리하다 보니까 어느 날 몸이 갑자기 말을 안 듣더라고요. 병원에 실려갔죠.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몸이 먼저라는 걸 그때 확실히 깨달았죠.

무대기술감독으로서 협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 있으신가요?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음향, 조명, 기계 다 같이 맞춰야 공연이 제대로 되죠. 그래서 공연 준비할 때는 팀원들과 계속 의견을 나누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대처하려고 합니다.

특히 현장에서 문제 생기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소에도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합니다.

빔프로젝터로 무대에 이미지를 송출하여 세트재료를
가공하는 독창적인 무대세트 제작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플라스틱 풍선, 낚시줄, 각재등을 활용하여
레인보우 아치 조형물을 제작하였다. 
무대에 필요한 작은 소품은 3D 프린터를
활용해서 직접 제작하고 있다. 
1번 사진의 제작방식으로 스티로품을 커팅하여
로고를 제작하였다. 
공연장 입구에 있는 조형물. 이 작품도 최주영 감독이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밤에는 LED 조명이 들어온다. 
공연장 감독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컨트롤해야하는 연중 기획공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무대기술 분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이 일은 단순히 기술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해요. 무대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거든요. 음향, 조명, 기계 다 같이 움직여야 공연이 제대로 되는 거예요.

후배 감독 양성을 위해 기술교육도 꾸준히 하고 있다.
최주영 감독은 무대전문예술인 무대분과 사업팀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몸도 관리 잘해야 합니다. 저도 젊었을 땐 밤새서 일하고도 버텼는데,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일이라는 게 끝도 없지만, 자기 몸부터 챙기고, 주변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배우는 자세예요. 항상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공연 환경도 바뀌니까 배우려는 자세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어요.

문화예술회관 관장님 등 문경시 공무원 분들과 함께 찾아가는 음악회 연주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일하면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크실 것 같아요.

그럼요. 문경은 정말 정이 많은 곳이에요. 공연을 하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아오시고, 공연장에 대한 애정도 크세요. 저희도 그런 분들 덕분에 힘을 얻어서 더 열심히 준비하게 되죠.

그리고 문경은 자연도 좋고, 사람들도 좋아요.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죠. 이곳에서 좋은 공연 많이 만들어서 지역 문화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최주영 문경문화예술회관 무대기술감독

평소 일 외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글쎄요, 사실 취미랄 게 없어요. 바쁘니까요. 시간이 없어서 뭘 따로 하질 못해요. 예전에는 낚시도 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안 하고요. 오토바이 같은 것도 안 타고, 그저 일하고, 집에 가서 쉬는 정도죠. 대부분 극장 일에 시간을 맞추다 보니까, 따로 저만의 시간을 가지기 어려워요. 그래도 집에서는 가정에 신경 쓰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요?

지금처럼 문경에서 좋은 공연 만들면서 오래 일하고 싶어요. 몸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서 계속 일하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스탭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지내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결국 가족이 제일 소중하니까요.

이렇게 긴 시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대기술감독으로서의 삶뿐 아니라 인간 최주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뜻깊었습니다.

  • Epilogue
  • 마치 엊그제 만난 사이처럼 편안한 대화로 시작한 인터뷰는 
  • 어느새 3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부러 끊어야만 했다. 
  • 끊지 않으면 아마 밤을 새도록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을 듯했다. 
  • 인터뷰 내내 느낀 감정이지만, 요즘 말로 이 사람 진짜 ‘찐’이다 싶었다. 
  • 과로로 쓰러질 만했겠다 싶었다. 
  • 공연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최주영 감독은 마주하는 세상 모든 것들을
  • 단 한 번도 허투루 대한적이 없어 보였다. 
  •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묵묵히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 온 마음을 다해 준비하는 그의 모습에서
  • 고된 무대 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무대는 
  • 언제나 진심이 담겨 있었고, 
  • 관객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겠다. 
  • 오늘도 무대 뒤 그의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음성이 인터컴 너머로 들려오는 듯하다. 
  •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음향 감독님 본종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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