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 때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잖아요.
저는 이 직업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광주시문화재단 남한산성아트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태성입니다.
경인지부의 사무국장부터 중앙 사무국장까지 역임하시며 (사)무대음향협회의 집행부 활동을 오랫동안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집행부 일을 하시게 됐는지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서울지부에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서울지부에 강남, 강북 이런 식으로 지역마다 파트장이 있었는데 제가 강남쪽 파트장을 맡게 되면서 모임을 조금씩 나가게 됐죠. 그때 이정욱 감독님이 총무를 하셨었는데 그만두시며 저한테 이쪽에서 일을 좀 해봤으니 총무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해서 처음은 서울지부 총무부터 시작하게 됐어요. 1년 정도 하고 제가 이제 이직을 해 경인지부로 와서 일반 협회원으로 있다가, 또 기회가 돼서 경기지부 총무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제가 서울지부에서 총무를 할 때 지부장이셨던 도명호 감독님이 때마침 이사장으로 나가시면서 저에게 같이 하면 어떻겠냐 제안을 해주셔서 이제 중앙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서울지부 소속일 때는 어느 공연장에 계셨었나요?
처음에는 롯데월드에 있다가 그 다음에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에 있는 강남구민회관에서 근무했었어요. 롯데월드에서는 3년, 강남구민회관에서는 7년 있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음향을 시작하시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을 전자과를 나왔는데 거기에 포크송 동아리가 있어요. 상반기 축제 때 한 번, 하반기 연말에 한 번 이렇게 공연을 하거든요. 노래는 안 되니까 세션을 했는데 세션을 하다 보니까 무대에 있는 것들을 그때 처음 봤어요. 오퍼레이터가 맨 뒤에 장비를 놓고 뭔가를 하는데 그때는 그게 뭔지 모르니까 ‘저런 사람이 있구나, 저런 것도 괜찮겠다’ 이런 생각을 잠시 했어요. 졸업을 하고는 일반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영상 프로젝터 설치 및 A/S를 하는 회사였어요. 그 일을 하다가 갑자기 문득 ‘음향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MBC 아카데미 레코딩과에 들어갔습니다. 1년을 다니고 거기서 녹음실을 연계해줘서 논현동에 있는 녹음실에서 한 1년 정도 있었어요. 조그마한 녹음실이었고, 거기서 약 1년 정도 음반 작업들을 했는데 그때가 딱 월드컵 때였어요. 그때 음반이 안 나가다 보니까 이제 감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나오게 됐고 편입을 한번 해볼까 공부하는 중에 롯데월드 공고가 나서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해서 근무를 하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 이제 쭉 공연장에서 음향 일을 하게 됐습니다.
대학교 때 세션으로는 어떤 악기를 하셨나요?
저희 세션은 통기타만 있었어요. 그런데 포크송 동아리이긴 한데 노래가 주가 됐고 저희는 자작곡으로만 했거든요. 그래서 물론 저도 노래를 하긴 했지만 주로 노래하는 친구들의 세션을 다 했어요.
녹음실에서 일을 하시다가 공연장인 롯데월드로 이직을 하셨습니다. 그때 당시 스튜디오와 라이브 쪽은 넘나들기 쉽지 않았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어떻게 해서 공연장으로 이직할 생각을 하게 되신 건지.
맞아요. 원래 처음 시작은 라이브 쪽으로 해보고 싶었는데 당시 대부분 아카데미에서 라이브보다는 레코딩을 가르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그때는 재즈 아카데미도 없었고, 아마 처음에 MBC 아카데미가 생기고 그 다음에 SBS, KBS 하면서 재즈 아카데미까지 생겼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음향을 배울 수 있는 데가 MBC 아카데미밖에 없었기 때문에 레코딩을 배우고자 한 게 아니고 음향을 배우려고 들어갔어요. 들어가서는 매일 릴 펀치하는 걸 배우고 그랬어요. 그래서 녹음실에서 일하게 됐을 때 거기서 처음으로 하드 레코더랑 프로툴을 봤어요. 녹음하는 어시로 있으면서 1년 동안 프로툴을 밤새 만지며 배웠죠.
여기 남한산성아트홀에는 언제 오셨나요?
2012년 12월부터 출근해서 올해로 12년째네요. 그때는 소속이 도시관리공사였고 재단으로 바뀐 지는 4년이 됐어요.
남한산성아트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남한산성아트홀은 클래식, 콘서트,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예술 전시를 개최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2011년에 개관했습니다. 극장은 대극장, 소극장이 있고요. 두 극장 모두 다목적 홀로 대극장은 1038석, 소극장은 270석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역 사회다 보니까 공연 대관도 지역 단체 위주로 있어요. 공연은 재단이 되고 나서부터 기획으로 괜찮은 공연들을 많이 가져오고 있고 공연 자체도 좀 많아졌습니다.




팀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무대 각 파트마다 2명씩 있습니다. 음향은 저와, 다른 한 분은 소극장 담당의 이정훈 감독님이 계시고요. 대·소극장을 나눠서 스케줄에 따라 근무를 하고 있고, 이정훈 감독님도 1급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상황이 안 되면 서로 로테이션을 돌고 있어요.
페스티벌이나 기획 공연과 더불어 대관 공연들도 많이 진행이 되는데 2개의 공연장을 2명의 음향감독님들이 운영하시는 게 시간적으로 어렵지는 않으신가요? 어떠신가요?
저희는 토-일요일이 휴일이고 월요일은 근무는 하지만 공연은 안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주말 공연이 많으니까 대·소극장의 대관을 같은 날 동시에 잡지는 말자고 기획팀과 얘기를 해서 번갈아가며 근무를 하고 있고 주 40시간에 최대한 맞추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도 오버가 되긴 하는데 주말에 일한 건 휴일 대체로 평일날 쉬는 등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억지로 억지로 맞추고 있죠. 그래도 연말에는 조금 힘들기는 해요.
최근 메인 스피커와 콘솔을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하셨습니다. 공사 설계 단계부터 준공 마무리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선 소극장의 메인 스피커를 L-Acoustics의 A15로 먼저 교체하고, 그 다음에 대극장 콘솔을 바꿨는데 FOH에는 YAMAHA의 RIVAGE PM5, 컨트롤룸에는 RIVAGE PM3로 설치를 했습니다. 대극장의 기존 메인 스피커 시스템은 개관 시 설치된 제품으로, 교체 공사 전까지 사용해 왔으나 스피커와 파워 앰프의 사용 연한이 지나면서 성능 저하와 고장이 빈번했었습니다. 전에는 극장에 EV가 있었는데 제일 탑의 2통이 2층 지향, 그 다음에 서브 4통, 1층 지향 6통 이렇게 돼있었거든요. 서브 우퍼를 메인 스피커 중간에 어레이로 설치하면서 소리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부피가 커서 시각적인 부담도 컸죠. 이에 부피는 작지만 고음질과 고출력을 제공하는 3웨이 스피커를 선택하는 데 집중했어요. 여러 번의 설계 검토와 입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EAW의 ANNA 시스템으로 결정했고, 양쪽에 8통, 센터 5통, 그리고 서브 우퍼는 EAW의 OTTO로 각 2통이 설치돼있습니다. (주)다산에스알과 메이사운드의 협력으로 설치와 튜닝 모두 문제없이 완료했습니다.


이번 리모델링 사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공을 들인 부분이 있나요?
예산 문제로 인해 스피커 수량에 제한이 있었는데, 좌우에 8개, 센터에 5개의 스피커를 설치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적은 수의 스피커로도 충분한 음압과 넓은 커버리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제품을 선정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센터 스피커는 공간상의 제약으로 많은 수의 스피커를 적용할 수가 없었어요. 일반적인 라인 어레이는 특성상 스피커 수량이 적으면 넓은 수직 커버리지의 구현이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요. EAW의 ANNA 시스템은 어댑티브 기능 덕분에 적은 수의 유닛으로도 1층 앞 열부터 2층 뒷 열까지 일관된 소리 전달이 가능해 최종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제가 처음부터 ANNA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다른 브랜드의 다른 모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러가지의 문제가 있어서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당시 코사운드 스피커 시연에 ANNA가 나왔었습니다. 메이저 브랜드들이 여러 개 있고 그의 대표 모델들이 시연을 나오는 거잖아요. 시연장에서 다 들어보고는 ANNA가 제일 괜찮다 해서 최종 결정을 하고 2~3년 후에 진행을 하게 됐어요. 이전에 강남구민회관에 있을 때도 스피커를 한 번 바꿨었는데 그때도 코사운드에서 직접 들어보고 괜찮다 해서 Adamson의 제품으로 바꿨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도 코사운드에서 듣고 결정하게 됐죠.



현재까지 사용해보시면서 공사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계십니까?
네, 매우 만족합니다. 음질과 음량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수직 커버리지를 조정할 수 있는 어댑티브 기능 덕분에 공연장 운영 상황에 맞게 최적의 음향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같습니다. 저희는 공연을 하면 거의 1층만 주로 개방을 합니다. 2층까지 차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1층만 개방하는 보통 때는 어댑티브 기능으로 8통을 전부 다 밑으로 쏟아지도록 하고, 또 2층까지 입장을 하게 되면 커버리지를 나누고, 렌탈팀이 들어오면 1층은 커버가 되니까 2층으로만 다 보내는 식으로 운영합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일반적인 스피커 시스템에서는 어렵습니다. 여러분도 ANNA 시스템의 편리함을 경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음향감독으로서 이제 몇 년 차이신가요?
2002년부터 해서 이제 22년차입니다.

음향감독으로 일해오시면서 직업 만족도가 어떠하신지.
나한테 딱 맞는 직업을 구했다고 지금도 와이프랑 얘기를 해요. 대학교 때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직업 잘 선택했고,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저는 이 직업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후가 이제 걱정이지만 지금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년이 있다 보니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직업이나 여가 등 퇴직 이후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우선은 정년 퇴직까지 꽉 채워서 일하지는 않을 생각이예요. 한 5년 안으로 퇴직을 좀 일찍 하고 싶어요. 와이프와 얘기하는 게, 그 이후의 준비를 지금부터 하고 조금 일찍 퇴직을 해야 조금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육십에 퇴직하고 나서 준비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놀러 다니는 것도 육십 넘어서는 지금만큼은 못 놀러 다니니 우선 퇴직을 좀 일찍 하고 한 일 년만 쉬자, 그 다음부터 일을 하자 했어요. 일단은 우리 딸이 대학을 들어가면 그 바로 이후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제 그건 그때 시기를 보고 여건이 되는 대로 해야겠죠. 사실 지금도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한데 퇴직을 위한 준비나 음향과 관련된 건 아니고 취미 생활처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따놓기는 했습니다.
직업적으로 연관이 되는 건가요?
나중에 연관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드론 조종 자격증을 따놨어요. 한다면 영상을 할 수도 있고, 앞으로 기술적인 방향은 점점 더 넓어질 거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땄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취미예요.
평소 가족분들과 캠핑도 종종 다니시는 것 같은데요. 캠핑 취미는 어떻게 갖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캠핑을 한 지가 그래도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캠핑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는데 친구나 형 따라서 몇 번 다니다 보니까 ‘어? 괜찮네’ 싶었어요. 이렇게 계속 하다 보니 ‘캠핑은 좋은데 텐트 치기는 싫고, 그러면 카라반을 살까’ 해서 미니 카라반을 하나 샀어요. 그걸 한 3-4년은 끌고 다녔는데 이제 아이도 크고 그러니까 또 좁은 거예요. 그러면 이거 말고 좀 더 나은 게 없을까 하면서 캠핑카를 알아보고 다녔어요. 그런데 캠핑카를 사면 저희 집에 차가 3대가 되는데 3대를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럴 거면 지금 갖고 있는 픽업 트럭에 올릴 수 있는 종류를 찾아보자 해서 이제 트럭 캠퍼를 찾아봤죠. ‘아예 끝판왕으로 사서 기변 하지 말자’ 생각해 결정하고 구매를 해서 차는 상시로 끌고 다니고, 캠핑 갈 때는 캠퍼를 위에 올려서 캠핑을 가고 있어요.

이렇게 캠퍼까지 구매해서 가족들과 꾸준하게 캠핑을 다니는 게 보통 쉽지는 않거든요. 대단하신 캠퍼시네요.
저희는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런가 봐요. 사실 기름값도 많이 들고 차가 커가지고 운전하기가 좀 쉽지는 않은데 그래도 저는 캠핑 되게 좋아해요. 딸이랑 어릴 때부터 캠핑 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녔거든요. 지금은 아이 학교 시험 공부 때문에 예전만큼은 못 다니는데 가자고 하면 아이도 여전히 좋아하기는 해요.
즐겁게 사시는군요. 마지막으로 SSM 독자이신 협회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까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회사 생활도 그렇고 음향도 마찬가지로, 외부팀이 오거나 만약에 크루로 나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아무래도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다시 만날 사이니까 어디를 가든지 이걸 잊지 않고 서로서로 조심하고 존중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