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헌 감독님께 | 김성연 감독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주말 이틀을 온전히 쉬는 날이라 작은딸과 시간을 보내고, 나름 엄마 노릇을 했다 생각하며 뿌듯함으로 월요일 출근을 했다.

공연이 며칠 없을 1월이라 월요일 아침이지만 마음으로는 너무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업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감독님한테서 오랜만에 카톡이 와서 속으로 뜨끔했다. ‘아차! 새해 안부 인사도 못 드렸네? 어? 자전거 일주하러 제주도 온다고 하셨는데 오셨나?’ 하며 카톡을 여는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니. 거짓말이어야 한다.

두 번, 세 번, 다시 카톡을 종료했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조금 이따가 한감독님께 “피싱이니까 링크 누르지 마” 하고 연락이 올 것 같았다. 의정부 식구들에게 사실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점점 제정신이 돌아올 때쯤 의정부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의정부 개관을 앞두고 선수가 와도 손이 모자를 판에, 제주도에서 왔다는데 어디 듣도 보도 못한 그것도 여자애가 들어와 뭐 어쩌라는 표정의 한감독님이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무서웠다. 계속되는 긴장감에 나의 실수는 점점 더 많아졌고, 급기야 처음으로 오퍼를 맡겨주신 공연에서는 시작 전에 먹은 저녁으로 급체를 해서 한감독님께 까였다.

케이블 마는 법, 납땜하는 법, 무선 마이크 운용하는 법, 콘솔 오퍼레이팅하는 법, 음악 재생하면서 무대 위 배우들과 호흡하는 법, 외부의 공연팀과 극장과의 조율을 하는 법 전부 한감독님께 배웠다.

가르쳐준 거 또 가르치고, 설명한 거 또 설명하고.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한심했을까, 얼마나 암담했을까, 내가 쟤를 데리고 근무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에….

그때 당시 한감독님의 나이만큼 나도 비슷한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 정말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공연장 감독으로서의 일 대부분은 한송헌 감독님께 다 배웠고, 아직도 그걸로 월급 받으며 생활하고 있으니 나한테는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선배님이다.

뒤에서는 다른 동료 감독님들께 잘 한다고 칭찬해 주시고, 챙겨주셨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런 고마움도 잊고 때로는 지가 잘나서 잘하는 줄 알고, 때로는 뒤에서 들려오는 그 칭찬이 부담되기도 해서 한감독님께 잘 못한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결혼과 동시에 훌쩍 제주도로 내려오고 아이 낳고 새 공연장에 적응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의정부에 있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고, 한감독님께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싸가지 없는 후배가 되어가고 있었다. 간혹 협회 모임에서 뵙고, 의정부 갈 때면 뵙고…. 시간이 많이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많은 줄 알았다.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물어보면 해결해주는 친정집 큰 오빠처럼, 평소에 연락하지 않아도 반갑게 인사해주시는 한선배님이 나에게는 그랬다.

이제는 누구한테 연락하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 극장 생활, 벽에 부딪히면 이제는 하늘 보고 이야기 해야 하나?

TO. 한송헌 감독님께

자전거 가지고 제주도 온다면서 이렇게 저를 서울로 불러내시면 어떻게 해요….

술 드시면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훌쩍 가시더니, 하늘로 가실 때도 이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인사도 안 나누시고 훌쩍 떠나버리시고. 정말 한감독님 별명처럼 ‘한칼’답게 떠나셨네요. ‘성연아~’보다는 ‘콩순아~’로 더 많이 불러주셨는데, 사모님이 그렇게 불려주셔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의정부에서 감독님과 함께 근무한 그 시간들은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난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들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제가 좀 더 표현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감독님께 더 자주 연락드리고 그랬을텐데 그렇지 못해 이제야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감독님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인사 꼭 만나서 드리고 싶었는데……. 이 어리석은 후배는 이제야 마음을 표현해 봅니다.

거기에서는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게 이곳의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세요.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 그곳에 가면 감독님 찾아뵐게요. 그때는 여기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것 잘 연습했다가 만나 뵈면 다 말씀드릴게요.

감독님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김 성 연
제주아트센터 음향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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