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주아트센터의 음향감독 김성연입니다.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제가 중학교 때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연예가중계였던 것 같아요. 누군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한 연예인의 인터뷰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인터뷰하는 장소가 녹음실이었어요. 녹음실에 앉아서 인터뷰하는 연예인 등 뒤로 보이는 커다란 장비가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콘솔이었겠죠.
어린 마음에 이름도 모르는 저 기계를 다루는 사람은 정말 멋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동경만 하고 있다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그 당시 우리 고등학교 연극반이 지역 극단과 연계되어 있어서 고등학교 다니는 3년 동안 교내 활동과 극단 생활을 같이 하게 된 거죠. 그때 다양한 연극 작품들에 참여했는데 저는 연기를 하고 싶은 학생은 아니었어요. 극단에서는 어쨌든 고등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야 하니 계속 연기를 시키려고 하는데 저는 연기 말고 음향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그때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연극에서 음향은 작품에 맞는 음악을 선택하고 플레이 백 하는 정도밖에 안 되잖아요.
그래도 저는 좋았어요. 대본을 보면서 적당한 효과음도 찾아보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제가 속해있던 극단이 도내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극단이라 고등학교 시절에 전국연극제도 같이 나가서 제가 음향 플레이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권성길 선배님도 처음 알게 된 거예요. 당시 제주 도내에 전문 공연장은 제주문예회관이 처음이었으니 거기서 공연한다고 음향실 가서 빨리 준비하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그때 제가 교복 입고 처음 권 선배님을 뵌 거죠. 음향실에 들어갔더니 예전에, TV에서 봤던 거랑 비슷한 기계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 이 일을 하면 정말 재밌겠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마음을 음향으로 정했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도 자연스럽게 관련 학과로 진학하신 건가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동아방송대학교에 음향제작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사실 거기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섬에서 뭍으로 나가려고 하면 집안에 지원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여자 혼자 밖으로 보낼 수 없다 하시면서 어른들이 허락을 안 해주셨어요. 어쩔 수 없이 가고 싶었던 음향제작과에는 진학 못 했고 음향은 계속하고 싶은데 도움이 되는 공부가 뭘까 고민하다가 음향이 아날로그에서 계속 디지털화가 된다고 하니 컴퓨터 관련 학과를 나오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대학교 전공은 그쪽으로 했습니다.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올라가게 되었고요.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증은 언제 취득하셨나요?
2000년도에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증 시험이 처음 있었어요. 첫 1회 시험을 보고 무대음향 3급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시험 보기 전에 아르코 교육도 한 번 갔었어요.
처음 음향감독으로서 일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가서 2001년도쯤에 홈페이지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홈페이지 취업 정보란에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음향감독을 뽑는 공고가 난 걸 본 거예요. 무대음향 3급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 중에 뽑는다고 하니까 ‘이 시험을 한 번 쳐봐야겠다’가 된 거죠.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청소년 수련관이 나오길래 여기서 사람을 뽑나 보다 하고 일단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 당시 고향에서는 왜 안 내려오고 계속 서울에 있는지, 취직할 거 아니면 얼른 내려오라고 압박을 주시던 때라 그냥 내려가기는 너무 싫어서 아르바이트 자리든 뭐든 좋다 하고 부랴부랴 시험을 봤어요. 시험을 청소년 수련관에서 봤는데 그때는 1차 필기시험, 2차 면접시험이 하루 안에 다 끝나는 상황이라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2차 면접시험을 기다리고 있는데 청소년수련관 바로 옆에 의정부예술의전당이 공사 중이었던 거예요. 공사 중인 의정부예술의전당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런 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응시한 시험이 의정부예술의전당이었어요. 시험에 응시할 땐 전혀 몰랐어요. 왜냐하면 취업 정보란에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이라는 이름으로 공고가 떠서 시설관리공단을 검색해 보니 청소년 수련관이 나왔고 저는 당연히 거기서 사람을 뽑는 줄 알았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일할 직원을 뽑는 건지는 아예 생각 못 했던 거죠. 2차 면접시험을 다 보고 난 뒤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어요.
너무 좋으셨겠습니다. 그때 당시 천 석 이상 되는 규모의 전문 공연장이 개관할 때 전국적으로도 큰 이슈였는데 개관 멤버로 합격하신 것 아닙니까.
제가 필기시험 1등이었대요. 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0대 초반 때니까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갔겠어요. 시험 비율이 필기시험이 60%, 면접시험이 40%였으니까 최종 점수가 높았죠.
그때는 여성 감독이 드물었으니 어떻게 보면 무대음향 업계의 1세대 여성 음향 감독이었네요.
그렇겠네요. 그런데 합격하고 공연장에 들어가니 무대팀 선배님들은 걱정이 많으셨나 봐요. 개관 때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일을 어떻게 시킬 거냐고요. 그땐 공연장에 여성 감독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사회 경험도 공연장 경험도 없었던 20대 초반이었으니까 마냥 해맑고 밝게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랬죠. 그 당시 무대 스태프 중에 행정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제가 컴퓨터 전공이다 보니 무대 팀 안에서 서무 같은 일을 했어요. 기안문 올리는 일이며 행정 관련 업무를 제가 거의 맡아 하면서 팀에 도움이 되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공연 진행하는 거랑 콘솔 잡는 법을 처음부터 가르쳐 주셨어요. 선배님들로부터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 좋았어요. 그래서 의정부 선배님들은 다시 만나면 친정 식구들 보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의정부 막내로 오래 있어서 각별하게 생각해 주시고 결혼하고 독립하는 것까지 다 지켜봐 온 분들이라 오랜만에 뵈면 여동생 온 것처럼 다들 너무 잘 해주세요.
힘들 땐 의지할 만한 곳이 좀 있으셨는지요. 객지 생활 하시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셨을 것 같은데요.
저 혼자서 다 이겨냈다고 볼 순 없고요. 선배님들이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힘들 땐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참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없었으면 솔직히 지금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때 참고 견디는 게 사회생활 하는데 베이스가 많이 됐기 때문에 지금 일하는 이 조직에 와서도 그래 이 정도쯤이야 라고 할 수 있는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협회의 맏언니로서, 여성 감독으로서 20년 넘게 활동해오시면서 어떠셨습니까?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여성 감독들이 일하는 것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좀 있었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여성 감독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껴요. 협회 모임에 같은 방을 쓸 수 있는 동료가 생겨서 아주 좋아요. 지금도 약간 차별 아닌 차별을 느끼긴 합니다만 예전보다는 아주 좋아진 것 같아요.
관련해서 기억나는 일화가 있을까요?
방송국 쪽에서 들어오거나 했을 때 저한테 감독님 어디 계시냐고 해서 ‘저예요’ 라고 했더니 아니 당신 말고 감독님 불러오라고 했던 경우도 있네요. 공연하러 들어오셔서 다짜고짜 몇 년 차에요? 몇 년이나 있었어?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런 경우에는 그냥 방송국과 공연장 간 서로의 기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음향감독으로서 후배 여성 음향감독님들께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주변에 혹시나 차별이라고 느껴지는 어떤 것들이 있다면 그냥 개의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들의 생각인 거고 그들도 어딘가에서 받은 차별을 우리에게 푸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이 일 자체를 즐기면서 쭉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냥 견뎠거든요. 근데 견디고 버티고 참고 하는 게 그렇게 좋은 방법만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서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방법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견디고 참아내는 것에 대한 계기가 여자로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었어요. 아주 힘들었어요. 배우자를 같은 분야에 일하던 사람을 만났다면 서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을 텐데 전혀 다른 분야의 배우자를 만나다 보니 처음에는 단순히 음향감독이라는 멋있는 직업을 가진 아내였는데 점점 가정 생활이 쉽지 않아지는 거죠.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남편 혼자 아이들을 보거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저도 공연장 일을 계속 신경 써야 하는데 아이들은 어리다 보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었죠. 그러다 보니 협회 모임에 갈 여유도 없어졌죠.
아이들은 지금 몇 살인가요?
아들은 중학교 3학년, 딸은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이럴 때 보면 저희 직업이라는 것이 참 가정 생활을 힘들게 하는 직업이네요.
대신 아이들이 엄마 직업을 자랑스러워할 때 뿌듯 한 건 있어요. 길거리 표지판에도 제주아트센터라고 크게 적혀있고 비교적 알려진 공간에서 근무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봤을 때 엄마 회사라고 하면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버티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그만뒀을 텐데.(웃음) 제가 공연팀 오퍼레이터나 RF 하시는 분 중에 여성 감독님들이 오시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중에 문득 느끼게 된 건데, 우리는 공연을 진행할 때 실수 안 하려고 순간의 완벽함을 요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어느 순간 집에 가서 아이들한테 공연 대하듯이 하고 있더라고요. 10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완벽을 요구하고 있는 저 자신을 깨닫고 엄청 미안했어요. 그 이후에 저희 공연장에 공연하러 오신 여성 감독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기에 지금 나의 상황과 모습들이 이러해서 내 아이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보시라고 하니 크게 공감하시더라고요.
의정부예술의전당에 계시다가 제주아트센터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결혼이었어요.
남편분은 어떻게 처음 만나셨는지 그 스토리도 궁금합니다.
동향분인데 친구 오빠였어요.(웃음) 한두 번 정도 본 적이 있어서 그냥 친구 오빠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친구가 ‘우리 오빠 좀 만나볼래?’ 하고 소개팅을 제안한 거예요. 의정부에 있을 때니까 여름 휴가 때 제주도에 내려가서 소개팅을 했는데 그게 연애로 이어지게 된 거죠. 사실 제가 예전에 친구 집안 행사 때 가서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고, 그때가 의정부에서 8년 차쯤 되었을 때인데 저한테도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친정엄마께서 이젠 내려와서 곁에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니 제주도로 돌아가서 결혼해야겠다 생각해서 짧은 연애 기간을 거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결혼하다 보니 남편은 아내의 직업이 음향감독인 게 단순히 멋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현실은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일을 나가야 하니 처음엔 아주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결혼을 기점으로 의정부에서 제주도로 돌아오시고 나서 바로 제주아트센터로 들어가게 된 건가요?
제주아트센터 공고가 바로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혼 후 민간 공연장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쯤 임신 사실을 알게 돼서 못 들어가는 상황이 되어 아이 낳고 1년 정도 쉬었어요. 육아하고 있다 보니 제주아트센터 공고가 나더라고요. 재미있는 사실은 의정부에 있을 때 제주아트센터(공사명: 한라문화예술회관)가 지어지고 있었는데 그때 제주 공무원들이 의정부에 와서 공연장 현장 견학을 하고 가고 그랬어요. 그래서 미리 제주아트센터가 지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계속 의정부에 있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제가 그 공연장에 들어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저는 참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적절한 시기에 원하는 직장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제주아트센터는 언제 개관했나요?
개관은 2010년 5월 19일에 했습니다. 개관 기획단이 2009년 7월에 생겨서 그때 입사를 하게 되었네요.
입사를 개관 기획단 때 하셨으면 개관할 때까지 참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이것저것 조사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개관할 때 소송이 걸려있는 부분도 있어서 복잡한 일이 많았는데 협회 선배님들 도움도 참 많이 받았어요.
법적인 문제를 잠시 언급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지난 일을 끄집어내는 거 같아서 자세한 이야기는 곤란하지만, 메인 장비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민원과 소송 문제가 생겼었어요. 그 일로 인해 입사 6개월 만에 시장실, 감사위원회, 경찰서, 법원 등을 오가며 다양한 일을 겪었죠. 약 3년간의 소송 끝에 마무리되었는데 그동안 조직 내에 담당 팀장, 과장은 계속 바뀌니까 바뀔 때마다 소송 관련 보고를 새로 해야 하고 이런 문제가 길어진 것에 대한 오해의 소지들이 있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았고 상당히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어린 자녀도 키워야 하고 그땐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게 아이가 어릴 때 약 3년 동안 회사의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과 남편과의 가정 생활을 조율하는 과정이 시기가 모두 겹쳤어요.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소송 건도 상황이 많이 정리가 돼서 조금씩 나아졌죠.
못 견디고 그만뒀으면 너무 후회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때는 정말 그만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음향 감독이라는 직업의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좋은 점은요, 내가 창의적으로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거 같아요. 어려운 점은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웃음) 어떤 분야의 일이든 삶을 살아가면서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음향감독은 트렌드를 계속 쫓아가야 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 점인 것 같아요. 그게 취미처럼 즐겁게 쫓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끔 버거울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직업입니까?
100%요. 요즘 들어 한 해 한 해 더 느끼는 건데,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을 내가 빼앗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나의 일에 대한 책임과 무게만 충분히 알고 있다면 저는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직업입니다.
2010년에 개관한 제주아트센터는 제주 최대 규모의 1,184석의 전문 공연장인데 주로 어떤 공연을 하나요?
제주아트센터가 처음부터 전문 공연장으로 공사를 시작한 게 아니라 제주시민회관의 대용으로 계획한 공연장이에요. 그래서 800석 규모로 극장을 설계했다가 제주문예회관도 800석 규모인데 더 크게 짓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해서 중간에 건축 변경이 되다 보니 객석 경사각이 좀 높아요. 발코니가 길어진 이유도 되고요. 나중에 1,200석 가까이 되는 객석의 전문 공연장으로 설계 변경을 하고 전문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공연은 도립예술단 클래식 공연이 좀 많은 편이고 오페라는 제작 공연까지 하고 있어요. 최근에 기획자분이 새로 오셔서 좀 더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어떤 도립예술단이 있나요?
제주 합창단, 제주 교향악단, 도립무용단, 서귀포 합창단, 서귀포 관악단이 있습니다. 제주아트센터에 제주 교향악단이 상주 중이라 한 달에 한 번 정기연주회는 항상 우리 공연장에서 하고 있어요.
제주아트센터 이외 다른 전문 공연장이 몇 군데 더 있나요?
제주시민회관은 1964년에 개관해서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요. 공공 공연장은 제주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예술의전당 세 군데입니다. 이외 한라대학교의 한라아트홀, 제주대학교의 아라뮤즈홀이 학교 소속의 전문 공연장이라고 볼 수 있고요. 사설에서 운영하는 소극장도 몇 군데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주아트센터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제주아트센터는 제주시청 본청의 1개 과로 되어있습니다. 5급 과장님이 제주아트센터 소장님으로 계시고 크게 공연운영팀, 시설관리팀으로 나뉘어서 무대는 시설관리팀에 들어가 있어요. 무대는 무대 기계, 조명, 음향 파트 당 2~3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연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저희 공연장은 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자연 친화적인 공연장이라 반입구를 오래 열어놓으면 새가 들어오는데, 언제 들어온 줄도 모르게 새 한 마 리가 들어와서 리허설하는데 갤러리에서 짹짹대고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통에 새 잡으려고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 마무리입니다. (사)무대음향협회에 가입하신 지 20년이 넘으셨는데 협회가 앞으로 우리 회원들에게 어떤 노력을 해줬으면 좋을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의정부에 있을 때는 경인지부 활동에 자주 참석하고 홈페이지 관리 일도 하면서 선배님들을 많이 알게 되어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협회 활동에 참여한 지 오래되어 제가 도움 받은 만큼 협회에 기여한 부분이 없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죄송한 마음이 너무 크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공연장 여성 감독님들을 위한 소모임 같은 걸 만들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저한테 진행해 보라고 하시면 저는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계획을 세우면 잘 안되더라고요. 그냥 순간을 열심히 살려고요. 순간과 순간이 켜켜이 쌓여 좀 더 성장하는 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