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 – 2001 국립극장
2001 – 2023 의정부예술의전당

30년 전 1994년 9월 소리회 소식지에 기고한
한송헌 고문님의 칼럼을 복원하여 기록합니다.
나는 늘 전철을 이용한다. 그래서 언제나 전철의 소중함을 느낀다. 집이 인천이어서 거리상 버스 등의 수단으로는 어림없는 거리에서 정해진 시간에 올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처럼 짜증스럽고 괴롭지만 그래도 비슷한 무리 속에 있다는 생각에서 위안을 찾는다.
인간의 본성 중에 힘이 들수록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순리라지만 우리는 지나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출근시 꼭 정해진 칸 정해진 장소에서 몸을 기댄다. 이상하게 느낀다면 비슷한 시간대에 똑같은 장소에 몸을 기대도 주위에는 매일 새로운 인물들이다. 어떤 자식이 인생은 스쳐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다고 표현했지만 우리들 모습에서 여유는 없는 것 같다.
처음 전철을 이용할 당시 (지금과 별 다를 바가 없지만) 여성 전용칸이 없었다. 전철의 혼잡도는 출근 시간이 임박해 질수록 혼잡도는 극에 달한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올라타면 그곳은 곧 지옥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에서 오는 압박감, 초라한 냉방 시설, 인간들의 열기…
그래도 참고 견디어 본다. 하지만 잠시 후 저쪽 서 들리는 굵직한 목소리(‘이봐 형씨 꼬우면 자가용 타고 다녀’), 곧이어 건너편의 가냘픈 여자의 비명소리, 그렇게 지옥철은 움직인다.
또 다른 자식이 이 지옥철에다 인생을 비유했다.
저마다의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인간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간다. 옷깃을 다듬고 열기를 토하며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상황의 연속이다.
이윽고 “어 내 지갑, 지갑” 하지만 다들 바쁘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다들 걸음을 재촉한다. 힘센 놈이 제일 편안하게 온다. 역시 연약한 여자는 고통스럽게 보인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남의 입장을 이해할 여유가 없다. 극단적 이기주의, 배타주의 사상에 우리는 젖어있다.
퇴근길의 모습은 정반대이다. 이때는 약간의 여유도 생긴다. 우리는 빈 좌석도 가끔씩 볼 수 있다. 60대 후반의 연로한 노인이 들어선다. 앉을 좌석이 없어 손잡이에 몸을 맡긴다. 이때 나는 좌석을 본다. 50대 후반의 중년 신사, 30, 40대 아주머니들, 갓 돌을 넘긴 애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 그 옆의 젊은 언니(?)들 누구 하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 피곤해 보이지도 않은데 다들 잔다.
남의 고통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여유, 굳이 경로사상 어쩌구 저쩌구 해봐야 소용없다. 요근래 물들은 Nimby 사상, 우리는 마음의 여유가 아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기성세대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그래. 인마 신세대는 뭐가 그리 대단하냐!
그래도 떠든다.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우리는 우리들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한다. 정이 메마른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우리 모두를 사랑하자.

행복한 날이었다는 것을 나이의 숫자가 늘어나니 더더욱 느껴집니다.
그 전에도 고마웠고, 지금은 더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2023년 3월, SSM 제6호 인터뷰 중 故 한송헌 고문의 마지막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