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창작의 동반자인가?아니면 경쟁자인가?

고등학교 시절,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선배와 동기의 권유로 동아리 그룹사운드의 멤버가 되었다. 음악 듣는 건 좋아했지만 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필자에게는 뜻밖의 결정이었다. 선친께서 30여년 간 근무하신 공직에서 정년 퇴임하신 시기가 필자의 고입 시기와 맞물리며 울산에서 대구로 이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학을 했는데, 돌이켜보면 낯선 환경과 사람들에게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돌파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덕분에 그 시절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주옥같은 대중음악 명곡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보냈고, ‘J. S. BACH’, ‘W.A.MOZART’, ‘L.V.BEETHOVEN’ 등 대가들의 음악 작품을 접하면서 작곡 공부를 시작하고 전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95를 출시한 해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 MBC에서 TV, RADIO 프로그램에 들어갈 BGM, SIGNAL MUSIC 등을 고르고 작곡하는 일을 했다. 그때 함께했던 도구는 1987년, Twelve Tone Systems, Inc.가 발표한 MS-DOS용 MIDI 시퀀서 Cakewalk, 그리고 Roland SC-55 사운드 모듈이었다. 현재의 DAW, 사운드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Cakewalk는 텍스트 모드에서 동작하는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MIDI 편집 기능을 제공했기 때문에 많은 사용자가 있었고 필자 또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 시간을 지나 현재로 돌아와서…

2023년 문예진흥원 선정, 문화와 ABB(AI, Blockchain, Big Data) 결합 지원 ‘기술 융합 작품 제작 지원 사업’에 필자가 속한 단체인 ‘전자음악협회 새온소리’가 선정되고 미디어아트 작품 제작을 각자 수행하게 되었다. 음원을 먼저 만든 후 인공지능을 이용해 영상을 생성해보았는데 그 당시 기술로는 짧은 단위로 시간을 나눠서 제작할 수밖에 없었고, 기대와는 상반되는 결과물, 업스케일링 시간 등으로 인해 8분 가까이 되는 영상의 제작에 꼬박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으며 상상하지도 못한 기발한 영상으로 보답을 받았다. 생성 인공지능의 첫 경험은 나름 신선했고 완성된 작품은 단체 작곡가들의 작품과 함께 갤러리에서 전시했다. 어린 관객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올해는 20년째 강의하고 있는 대학에 교양 과목으로 신설된 ‘미디어콘텐츠와 문화’ 강의를 맡게 되었다. 미디어콘텐츠 관련 학부가 아닌 공연음악학부에 개설하여 수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전공과 결합한 자신만의 콘텐츠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본을 작성하고 내레이션을 만들고 영상을 생성하고 배경음악까지 만들어서 자신만의 스토리로 콘텐츠를 만드는 실습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서비스를 적극 활용했고 작업 속도와 결과물 또한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최근 대구·경북 지역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유일하게 사회적 기업 인증을 통과한 ‘MS엔터테인먼트(주)’에서 맡아 진행하고 있는 출산 장려 프로젝트 ‘엄마들의 예능 시간’의 캠페인 송 음원 작업을 의뢰 받았다. 대표님을 통해 “저출산 위기 시대를 타파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는 육아로 인해 자신만의 시간을 잃어가는 엄마들과 함께합니다. 이들을 위한 미술치료, 음악치료, 대화치료를 시작으로 엄마들이 본인의 출산과 육아를 바탕으로 한 가사를 직접 작사해 노래하고, 퍼포먼스까지 가미된 영상이 제작될 것입니다.”라는 설명을 듣고 흔쾌히 수락했다. 소속 뮤지션이 가이드로 부른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 트랙을 듣다가 문득 필자가 주로 사용하는 DAW인 ‘Logic Pro 11’ 업그레이드 소식이 떠올랐다. 업그레이드 내용 중 ‘Session Player’ 기능을 테스트 해보고 싶은 생각에 프로젝트를 만들고 가이드 트랙을 로딩했다. 템포를 Mapping하고 새롭게 도입된 ‘코드 트랙’에서 송폼에 맞춰 Tension을 가미한 코드네임을 입력했다. ‘Drummer’를 로딩하고 스타일을 지정한 후 가이드 트랙의 그루브를 따라가도록 스윙 값을 조절했다. 새롭게 도입된 ‘Bass Player’와 ‘Keyboard Player’는 로딩 후 코드 트랙을 따라서 진행을 이어나가도록 했고 구간마다 노트를 복잡하게 연주할지 단순하게 연주할지 설정했다. 보이싱이나 음역 또한 자유자재로 설정이 가능했다. 테스트 결과물을 듣고 대표님은 “이 정도면 그대로 사용해도 되겠는데요.”라며 놀라워했고 회사 소속 싱어송라이터들을 대상으로 관련 내용 특강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필자가 활동하는 영역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넘어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저작권까지 인정 받으면서 말이다.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의 감정과 경험, 그리고 사회·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정교하고 창의적인 일이다. 반면 방대한 데이터셋과 통계적 패턴을 반영하여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작곡은 섬세한 감성이 결여될 수 있다. 하지만 상업음악, 광고, 영화음악 등 빠른 결과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효율적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음악 전공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걱정어린 눈으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지요?”라는 질문을 한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대답했다. 현재 시점에서 예술은 구현하고자 하는 도구, 재료, 기술 같은 방법보다 그것의 주체인 사람이 깊이 개입한 의도와 생각, 그리고 상상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6월 19일 뉴스 헤드라인이다. ‘엔비디아(NVIDI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제치고 시총 1위 등극’

인공지능 데이터 센터에 필요한 반도체 시장에서 거의 독점에 가깝게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기업의 나스닥 시가 총액 1위 등극.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왕좌를 내줄 거라 그 누가 예상했을까.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최근 인터뷰에서 코딩 능력보다 컴퓨터에게 무엇을 어떻게 명령할지 결정하는 판단력이 훨씬 더 중요한 능력이 될 거라고 강조했다. 인문학적인 소양이 우선이라는 해석을 해본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넘보는 경쟁자가 아니라 먼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할 친구 같은 동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동욱

무대음향협회 대구경북지부 운영위원
계명문화대학교 공연음악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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