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아트센터 임우재 음향감독

#강동아트센터 임우재 음향감독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강동아트센터에서 음향감독으로 근무하고 있는 임우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강동아트센터에는 언제부터 근무하셨나요?
예전에 서울시향에 속한 임시 조직으로 노들섬 문화재단 준비단에 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정치적인 일과 더불어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이 잠깐 보류되더니 2011년 12월 31일부로 준비단이 그냥 해체되어 버렸어요. 한순간에 준비단이 공중분해 되어 버리니 착잡한 마음을 좀 추스르고 있었는데 지인에게 연락이 와서 남한산성아트홀에 아직 음향감독이 없는데 당장 공연은 해야 하니 장기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을 좀 봐줄 수 있겠냐는 거예요. 고맙게도 주변에서 그런 제안이 와서 두세 달 정도 일을 계속하다가 이후 강동아트센터 채용 공고에 지원하여 2012년 8월에 처음 이 공연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처음 무대음향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원래는 방송 기술 스태프 지망생이었어요. 방송 기술 쪽으로 공부하면서 방송국에 시험도 치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계속 채용 공고를 찾아보던 와중에 명보아트홀에서 스태프를 뽑는다는 공고문을 보고 거기에 지원했는데 합격이 된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무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1998년도 즈음일 거예요.

그 당시 명보아트홀은 극단 민중이 운영하는 전용 공연장이었어요. 거기서 무대, 조명, 음향 파트 통틀어 유일한 무대 기술 스태프로 제가 근무하게 되면서 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어요. 민중극단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일을 처음 배울 때도 엄청난 선생님들께 배웠어요. “이 친구 이번에 새로 들어온 스태프인데 혼자 다 해야 해.” 라고 하시면서 업계에 유명한 선생님들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분들이 오셔서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다행히 좋은 선생님들께 일을 배워서 그런지 혼자서 스태프 일을 모두 해내야 했지만, 조명, 음향 둘 다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둘 다 계속 제가 하고 싶었는데 어느 날 대표님이 혼자서 여러 사람 일을 해내고 있으니 우리 극단에는 참 고맙지만, 사실은 조명이든 음향이든 하나만 선택해서 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당시 벽제 아르코 무대 예술 아카데미가 한 학기 등록금이 80만 원이었는데 등록금 지원을 해 줄 테니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일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대신 이제 전공을 하나로 선택해야 했던 거죠.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둘 다 너무 하고 싶었어요. 고민 끝에 조명으로 좀 더 마음이 기울어서 조명 아카데미를 신청하려고 하는데 인생의 운명이 그때 바뀌었던 게, 조명 아카데미에 빈자리가 없었어요. 음향은 있었고요. 그래서 음향 아카데미에 지원해서 다니게 된 거예요. 그런데 중간에 명보아트홀이 경영난을 맞게 되면서 공연장을 결국 처분하게 됐고 직원들이 전부 졸지에 실업자가 돼버렸어요.

아카데미도 그만두게 되면서 여기저기 아르바이트하며 알게 된 음향 렌탈팀에 들어가게 됐는데 뉴스라이브라는 팀이었어요. 그 당시 뉴스라이브가 주력했던 공연이 거의 가수들의 콘서트 공연이었는데 이전까지는 연극, 뮤지컬 같은 극공연 음향에 익숙하다가 제가 잘 몰랐던 콘서트 음향을 하려고 하니까 처음에 너무 힘들더라고요. 3년 정도 근무를 했는데 일이 정말 많았어요. 잠도 잘 못 자고 하루에 많게는 여덟 군데씩 나가서 일을 해야 하니까 더 이상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2000년도에 서울 양재동에 있는 교육문화회관을 가게 됐습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첫 극장 생활의 시작이네요.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 있다가 대전예술의전당, 성남아트센터를 거쳐서 한강 예술섬 프로젝트였던 노들섬 문화재단 준비단에 가게 되었네요.

2000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을 시작으로 현재 강동아트센터에 이르기까지 극장 근무 경력만 24년 차인 셈이네요. 대전예술의전당과 성남아트센터는 개관 멤버로서 근무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1998년 조선일보에 실린 극단민중과 명보아트홀에 관한 기사(오른쪽 맨 아래)

2003년 대전예술의전당 개관 준비 기간 중에 공연장 실제 운영 점검을 위한 시운전 공연으로 대극장에서 오페라를 했었어요. 오페라는 세트가 좀 크니까 후무대에서 세트가 전환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공연 당일에 하부 구동부 모터가 망가져서 세트 전환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극장에 모든 스태프가 달라붙어서 슬라이딩을 만들어 버렸어요.

누구는 바퀴를 사 오고 누구는 망치질하고 하루 종일 모두가 거기에 매달려서 후무대 규모의 슬라이딩을 만들어 낸 거예요. 공연에 큰 지장이 있을 뻔했는데 슬라이딩으로 세트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어 공연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게 돼서 부시장님께도 칭찬을 엄청나게 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는데 슬라이딩 만드는 일 도와주다가 음향 체크를 못 한 거예요. 해설이 있는 오페라 공연이라 해설자가 핀마이크를 차야 하는데 미처 음향 체크를 못 하고 공연에 들어가야 했던 거죠. 제가 급한 마음에 손에 잡히는 핀마이크 하나를 막 집어서 번호만 확인하고 무대에 갖다주고 음향 보조 감독이 해설자에게 마이크를 채워서 바로 공연을 시작했는데 핀마이크 신호가 막 끊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당시 마이크 안테나가 무대에 있어서 음향 보조 감독에게 안테나 위치를 조정해 보라고 했는데도 신호가 계속 끊겨서 결국 마이크를 내리고 그냥 육성으로 1부 공연을 진행해야 했어요. 2부 때는 유선 마이크를 급하게 준비해서 진행했지만 이미 1부 공연 때 문제가 터졌으니, 면목이 없더라고요.

공연이 끝나고 바로 핀마이크 점검을 해봤더니 RF 신호는 멀쩡했어요. 아직도 번호가 생각이 나는데, 공연에 사용했던 11번 송신기가 문제였던 거예요. 하필이면 송신기 가방 속 총 24개의 핀마이크 중에 그냥 하나 딱 집은 게 11번 핀마이크였는데 그게 문제였던 거예요. 하필이면. 보통은 1번부터 사용을 하잖아요. 1번을 썼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너무 급한 나머지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을 했는데 하필 문제가 있는 핀마이크였어요. 그 사건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무조건 내 거 철저하게 먼저 다 해놓고 도와주자. (웃음)

#강동아트센터 임우재 음향감독

대전예술의전당에 이어 바로 성남아트센터까지 개관 멤버로 참여하셨군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성남아트센터로 이직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성남아트센터 무대운영부장님이 원래 유니버설 발레단(UBC)에 계셨었는데 대전예술의전당으로 발레단 공연을 하러 내려오셨었어요. 그때 대전에서 처음 뵀었는데 저는 제 나름대로 서울에서 오신 음향 선배님이라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공연 준비를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발레단 공연 기간에 제 결혼식이 잡혀있었어요. 결혼식을 위해 공연 기간에 저는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사실 내일이 제 결혼식이라 죄송하지만, 오늘까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양해의 말씀을 드리니 결혼식 전날까지도 늦게까지 공연 연습을 도와줬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시고 그때 저를 굉장히 좋게 보셨나 봐요.

그 후에 성남아트센터 개관 멤버로 확정이 나시면서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성남에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너무 감사했지만, 처음엔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대전예술의전당 관장님께서 성남아트센터 개관 자문 위원으로 계셨는데 혹여나 성남으로 가겠다고 하는 직원들이 있을까 봐 미리 으름장을 강하게 놓으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러한 상황이라 성남에 못 갈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마무리 지었는데 이후에 한 번 더 연락을 주신 거예요.

그때는 저도 그 기회를 놓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결혼 이후 서울이 고향인 아내가 대전에 내려와서 친인척도 없는 타지에서 결혼 생활을 했는데 저는 매일 늦게 퇴근하니 혼자 집에 남겨진 아내가 안쓰러워서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욕을 먹더라도 성남으로 이직해야겠다 싶어서 관장님께 제 상황을 말씀드리니 생각보다 쿨하게 보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2005년에 성남아트센터로 이직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냐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잘 대해주라는 거예요. 인간관계를 너무 계산적으로 하지 마시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주다 보면 분명 언젠가 본인에게 좋은 일이 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노들섬 문화재단 준비단으로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성남아트센터에서 5년 정도 근무하고 나니 저도 좀 편해졌었어요. 성남아트센터 음향감독이 4명이었는데 서로 합도 잘 맞고 분위기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한강 예술섬 프로젝트(노들섬 문화재단 준비단)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어요. 성남보다 연봉도 더 적었고 개관 준비라는 게 얼마나 일이 많고 힘든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냥 한 번 더 도전해 보자 하고 노들섬 문화재단 준비단에 가게 되었습니다.

준비단에 가서는 사무실을 따로 임대해 놓고 몇 개월 동안 설계 검토에 매진했어요. 사실 처음 준비단 사무실에 갔을 땐 우울감이 좀 있었어요. 현장에서 공연도 못 하고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 하루 종일 도면만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니 아주 답답하더라고요. 그리고 시청에 가서 회의도 자주 참석해야 해서 늘 세미 정장을 입고 다녀야 했는데 준비단에서의 첫 한 달 정도는 잘 온 건지 확신이 없어서 혼란스럽고 적응 시간도 많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좋았던 것은 준비단이 비교적 일찍 꾸려진 편이라 실시 설계(*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하여 공사에 필요한 설계도서를 작성하는 단계) 전에 우리 준비단 의견이 다 반영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그대로 쭉 진행만 됐다면 정말 제가 원하는 대로 극장을 구성할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꼼꼼하게 검토하고 열심히 준비했었는데 그대로 쭉 진행되지 못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참 깊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강 예술섬 프로젝트 추진당시 조감도

무산되었지만 한강 예술섬 프로젝트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강대교 밑에 노들섬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섬 안에다가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다목적 공연장 3개를 지어서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 계획이었어요.

벤치마킹했던 공연장으로는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시어터스 온 더 베이(Esplanade – Theatres on the Bay),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Oslo Opera House) 등이 있는데 한강대교 길이 막힐 것을 대비해 관객 전용 유람선을 만들어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오도록 설계까지 해둔 상태였죠. 추진이 됐으면 세계적으로 괜찮은 문화 관광 상품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무산이 되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강동아트센터 외부 전경

강동아트센터에 2012년에 처음 오셔서 현재 12년 동안 근무를 하고 계시는데 강동아트센터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처음에 강동아트센터가 독립적으로 있을 때는 직원들이 임기제 공무원이었는데, 2020년 1월에 강동문화재단으로 출범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직원들이 고용 승계가 되어 재단으로 넘어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강동문화재단 공연전시팀에 소속되어 있고요. 공연전시팀 안에 무대, 전시, 기획, 홍보가 함께 속해 있어요.

무대팀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는데, 재단이 처음 출범될 때 이 부분에 대해 건의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도 아쉽게 반영이 되지 않았어요. 조직 구성을 새로 바꾸려면 조례도 바꿔야 하고 구청이랑도 협의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 부분은 궁극적으로는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음향 관련 직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선 이 일은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경제력이나 실력은 본인이 노력한 만큼 따라오는 것이지만 저는 인성을 잘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히 잘 대해 주세요.

그리고 요즘에 적극적으로 잘하는 후배들이 많아서 우리 음향 분야가 활성화가 되었는데 극장 소속이든 렌탈 소속이든 프리랜서든, 서로 너무 경계를 두지 말고 기술 교류할 기회가 있다면 서로 존중해주고 궁금한 부분은 부끄러워하지 말고 물어보고 많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모임도 자주 나가서 이런 선배, 저런 후배 다양하게 만나보며 경험해 봐야 내가 부족한 부분을 알게 돼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제일 중요한 건 인성입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음향으로는 더이상의 바람도 미련도 없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자리에 욕심내기보다는 그저 나를 필요로 하고 후배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될 만한 자리가 있다면 저는 그런 곳에서 정년을 마무리하고 싶네요.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정년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보고 있어요. 음향감독으로서의 삶은 잘 정리하고 정년 이후에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데, 현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을 때 떠오른 게 당구와 골프더라고요. 그래서 당구장이나 스크린 골프장을 차리면 좋을 것 같아요. 음향처럼 제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일을 계속 찾아서 하고 싶은데, 당구는 동네 당구장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을 정도로 좋아해요. 골프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나온 건 아니지만 스크린 골프장을 창업하려면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번에 공부 좀 해보려고 책도 샀어요. 앞으로 계속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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